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3대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 IF: 만약 [[단일화]]를 했다면 승자는? ==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7121800239111003&editNo=1&printCount=1&publishDate=1987-12-18&officeId=00023&pageNo=11&printNo=20525&publishType=00010|선거 이후 고바우영감1(1987년 12월 18일자, 조선일보)]]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7121900239111002&editNo=1&printCount=1&publishDate=1987-12-19&officeId=00023&pageNo=11&printNo=20526&publishType=00010|선거 이후 고바우영감2(1987년 12월 19일자, 조선일보)]] 1987년 12월 18일자 [[고바우 영감]]은 대선 기간 동안 상당히 많이 단일화 얘기를 했었던 것을 자평했고, 12월 19일자에는 [[양김]]이 분열해 [[노태우]]가 당선된 걸 까기 위해, [[노태우]] [[전 대통령]]이 [[양김]][* 여기선 두 김 후보라고 했다.]을 대통령 당선 축하 파티에 초대해 참석자들을 죄다 자빠지게 만들었다. 사실 양김은 민주화 투쟁을 했고, 양김의 지지층 모두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지만, 김영삼의 주요 지지층은 원래 [[부울경|PK]] 지역에 살고 있던 토박이들과 해당 지역 출신들이 다수 포함된 수도권 지역의 [[중산층]]이 많았던 반면, 김대중을 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[[호남]] 지역 주민들과 수도권, PK 등에 이주해 있던 전라도 출신 노동자, 서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. 물론 역사에 만약이란 무의미하니, 아래 내용은 그냥 당시 국민 정서와 판세를 이해하는 내용 정도로만 받아들이자.[* [[10.26 사건]]으로 [[박정희]]가 암살된 이후, 여당인 [[민주공화당]]의 총재가 된 [[김종필]]의 주도로 제1야당인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이 직선제에 합의하기로 한 상태였지만 [[5.17 내란]]으로 무산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